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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생활, 그리고 느끼는 점

taeyounkim 2021. 6. 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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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8일,
신체검사 2급 판정을 받은 나는 대한민국 육군 현역으로 군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2021년 6월인데, 벌써 군생활을 한지 10달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면 그래도 아직 좀 더 고생할 시간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병 2호봉 짬이 된 지금 꽤나 복무를 오래 했다는 느낌도 들고, 이병이나 일병 때보다 꽤나 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아서 그동안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


기억에 남는 일들만 몇 가지 정리를 해보고 싶다.
일단 훈련소가 끝나고 처음 자대로 왔을 때 그 기분은 절대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득실거리는 선임들과 이번엔 어떤 놈이 들어왔나 싶어서 쳐다보는 눈길들, 나의 빡빡 밀린 6mm 머리, 처음보는 얼굴들은 모두 날 겁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여기있는 사람들 모두 집 가야 너가 간다는 한 선임의 말에 더더욱 충격을 먹은 전입날이었다. 여기서 500일이나 보내야 집을 간다니... 이랬던 것 같다. 그땐 시간이 정말 안 갔던 것 같고 오히려 훨씬 더 편해진 지금 시간이 수월하게 잘 가는 것 같다.

전입을 오면 신상정보를 물어보고 기록하는데, 일단 두 가지에서 부대 전체적으로 어그로가 끌렸다. 내 출신 학교와 토익 점수였다. 솔직히 밖에서 비슷비슷한 학교 다니는 학생들과 너무나도 실력적으로 뛰어난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있다가 전국적으로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군대에 오니 나의 이력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어로 말을 해보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진짜 연세대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관심이 싫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썩 달갑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리 여단에서 통역병을 모집한다는 글이 2월에 올라왔다. 토익 점수가 있던지라 자신있게 내 이름을 써서 올렸다. 여전히 일병 짬찌였지만 자신감 하나는 그때도 넘쳤던지라 그냥 들이댄 기억이 난다. (뭐 사실 이런거에 눈치본다는 것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결국 여단에서 통역병으로 날 쓰겠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우리 부대가 혹한기 훈련을 한 2021년 2월 1일부터 2월 3일까지 동두천의 Camp Casey로 여단 한미 연합보급훈련 통역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같이 간 사람들은 모두 여단에서 한 가닥하는 사람들이었다. 대위 중에서도 연차가 좀 많이 된 2010년도 초반 군번 대위분들, 그리고 여단의 중령 처장님과 같이 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Camp Casey에서 내 이름이 누락되었던 해프닝도 있었지만 그냥저냥 잘 넘어가서 결국 들어갈 수 있었다. 훈련 기간 동안 여단장과 군단장 모두 텐트에 방문하며 군생활 전체에서 볼 별 개수보다 많은 별들을 본 것 같았다. 일병이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고 왔다. 여단 측에서 내 짐이 모조리 들어있는 군장을 잘 관리하지 못해 3일 동안 씻지도 못할 뻔 했지만 우애곡절 끝에 찾아내었던 일도 있었다. 일단 통역파견은 너무 재밌었다. 처장님 옆에서 주로 통역하는 임무를 맡았고, 회의가 있거나 우리 측에서 브리핑을 할 일이 생기면 내가 PPT자료와 처장님의 대본을 모두 번역해 브리핑 도중 영어로 대사를 넣어주는 역할을 했는데, 미국인들도 내 영어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잘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내 15년 영어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장님 옆을 졸졸 잘 쫓아다니며 많은 경험도 하고 신나는 파견이었다.


Camp Casey



아, 그리고 카투사 친구들은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호화로운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을 때도 달달한 외국 간식들이 모두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는데, 어떤 여군이 내가 밥을 먹고 cheerios를 후식으로 먹고 있는 걸 보고 "You can take all this shit right here."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많이 남으면 이딴거 가져가라는 얘기를 할까 싶었다. 우리 부대에 이 박스 가져다 놓으면 10초만에 동날텐데... 그리고 엄청 넓은 1인실도 보고 충격먹었다. 거의 우리 생활관 크기의 1인실을 이 사람들은 쓰고 있다니 충격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파견은 여단에서 총 3명이랑 같이 갔는데, 그 중 한 명은 알고보니 우리 학교 기계공학과 선배이셨다. 전역을 그때 한 달 앞두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미 사회에 나가서 재밌게 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교환학생 얘기를 했는데, 그 선배는 Syracuse University에 교환학생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Syracuse하면 쨍한 주황색 학교 로고에 Carmelo Anthony밖에 모르긴 하는데, 그래도 말만 들어봐도 엄청 재밌을 것 같았다. 나도 교환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좀 더 들게 된 것 같다. 배운 것도 많고 먹은 것도 많았던(?) 파견은 정말 성공적이었고 부대에 돌아오기가 너무나도 싫었던 기억이 난다. 아 참 그리고 식당에서 어떤 카투사 친구랑 말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고생한다고 그 사람이 스무디킹 한 잔씩 사들고 다음 날 점심에 나타나주기도 했다. 너무 고마웠고 세상은 아직 이렇게 따뜻하구나 싶었다. (감사합니다ㅠㅠ)

그 뒤로 기억에 남는 큼직한 일은 없었다. 그냥 남은 기간 조용히 할 것 하고 공부할 거 다 공부하고 나가는 것이 내 목표이다. 군생활을 그동안 하면서 얻은 것이라고는 다크서클과 피곤함과 빠진 살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도 어떤 의미에서 유예기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020년 전반기의 김태연은 그냥 폭주족이였던 것 같다. 뒤도 안돌아보고 맨날 놀 궁리만 했던 것 같다. 강의도 싸강이여서 늦게 일어나고, 과제도 너무 어려운 부분은 그냥 스킵하고, 공부도 전보다 열정적으로 하지 않았었다. 아마 군대를 곧 간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태로 군대에 입대하지 않고 쭉 갔더라면 난 지금쯤 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로라도 군대에 입대한 것이 하나의 어떤 일시정지 버튼 역할을 해줄 수 있진 않을까 싶다.


내 최애 유투버 Casey Neistat이 어떤 영상에서 이 말을 한 기억이 난다.

"If you dont know what you want to do, get a job doing something you hate. 'Cause you will spend every minute of it fixating on what you wish you were doing."

Casey는 자신의 dream city였던 NYC에 정착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가졌던 직업이 dishwasher라고 한다. 친구 집 쇼파, 단칸방을 전전하던 그가 이렇게 성공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은 dishwasher이다. 그는 이 경험을 그저 하나의 괴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이 위에 내가 쓴 문구인데,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군대 와서 느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면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을 수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도 편하고 리스크가 없는데 굳이?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근데 이렇게 강제로 징병된 것처럼 자신의 comfort zone에서 강제로 끌어내어지면 그때부터 씩씩거리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진짜 행복한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거보다 이걸 하고 싶은데" 혹은 "이걸 할 때 내가 행복했었지" 등의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군대가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정말 끔찍한 곳이 군대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그 어느 곳보다 수직적이고 스트레스를 준다. 밤에 근무 서라고 깨우는 것도 극도로 혐오스럽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겪는 중에 나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라는 배가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아야 하는지 정도는 파악했다고 믿고 있다.

항상 생각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느낌을 요즘들어 많이 받는다. 군대에 있으면서 진로나 미래에 대해 시간을 내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일단 심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말년에 완전 편할 때 말고는 사실 그런 문제들보다는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더 많이 쌓여있다. 그러나 그런 마이너한 문제들, 예를 들어 새벽에 근무를 들어가서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던지, 선임이 못되게 굴어 화가 난다던지 이런 문제들을 자꾸만 반복하여 생각하고 곱씹고 그러다보면 큰 산, 숲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메이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내가 최근까지 그래와서 안다. 밖에서의 나와는 다르게 내가 여태까지 너무나도 마이너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열불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지 않은가? 정신을 차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 링크드인(LinkedIn)이라는 새로운 SNS를 발견해서 회원가입하고 둘러보는데, 이 SNS는 자신의 경력을 게시하는 목적으로 쓰는 것이고, 친구나 지인의 경력을 보고 inspiration을 받는 것은 물론, 운이 좋다면 recruiting까지 당할 수 있는 SNS 플랫폼이다. 나는 사실 아직 한 것이 그닥 많이 없다. 토익 점수? 좋은 대학 입학? 40프로 정도 남은 군필 딱지? 아직은 한참 부족하다. 언젠가는 나도 내 경력 칸이 넘쳐 줄여서 작성해야하는 그 날이 오겠지? 라는 기대를 가져봤지만 내가 나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냉정하고 피 튀기는 사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살아야겠다.

요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느라 정말이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다가는 이도저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너무나도 많이 들기 때문에 일과 때 무슨 일을 해야하는 시간이 아니면 거의 남는 시간의 90%는 진로에 대해 생각하며 보내는 것 같다. 머리 속을 다른 생각으로 채우니까 옆에서 아무리 누가 뭐라하건 뭔 짓을 하던 신경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그냥 내 갈 길 갈게 이런 마인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것은 이런 생각들이 길고 험난한 군생활을 조금이나마 덜 거지같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직 고민의 끝은 보이지 않고 과연 끝이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슬슬 결정의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은 내 머리가 직감하고 있는 것 같다. 진로 고민을 하는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니까 세상 이거보다 힘든게 없는 느낌이다. 조사할 것도 엄청 많고 정보도 많아야 하고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내가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투자해야하는 시간도 많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하고 있고, 사실 공부를 하기도 해야하지만 이왕이면 정확한 방향성으로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사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는 나름의 방향성과 많은 정보가 모아진 것 같고, 그에 맞게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도 잘 파악하여 공부도 병행을 하고 있다.

이제 군생활 남은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나는 별로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 정도면 금방 가지 않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남은 기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내 군생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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